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이른바 '영수증 이중제출' 의혹이 홍영표 의원의 해명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영수증 이중제출로 정치자금을 중복수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일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나오자 보도자료를 내고 '지출행위를 어느 통장에서 했는지에 대한 회계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표현과 주장이 이뤄진 것에 유감을 표한다. 공금 계좌에서 관리하는 지원경비를 '빼돌렸다' '중복수령' '반납'이라 표현하는 것은 사실관계와 명백히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등은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26명의 국회의원이 국회사무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동일한 영수증을 제출해 중복으로 예산을 수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빠져나간 국회 예산은 2016년 6월부터 작년 12월까지 총 1억5990만여원 수준이며 이 가운데 홍영일 원내대표는 가장 많은 금액인 1936만원을 이중 수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에 "의원실은 의정보고서 제작 및 발송을 위한 정책홍보물 유인비를 국회 사무처에서 지원받았다"며 "의원실은 해당 비용을 사무처가 입금한 '홍영표' 명의의 계좌가 아닌 '홍영표 후원회' 명의의 통장에서 업체로 지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홍영표 원내대표의 영수증 이중제출이 논란이 되면서 관련검색어로 '홍영표 친일파'라는 검색어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친일파와 어떤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친일파 후손 홍영표
홍영표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은 지난 2015년 8월 10일 '친일 후손으로서 사죄드립니다'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임을 공개적으로 밝혀 화제를 모은바 있습니다.
홍영표의원은 해당글에 지난 2013년 11월 독립유공자협의회로 부터 감사패를 받을당시 찍은 사진도 함께 게시했습니다. 사진속 홍영표의원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홍영표의원은 "사진촬영당시 주위에서 웃으라고 독려했지만 자신은 웃을수 없었다"고 회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홍영표의원이 친일인사의 손자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으로 독립유공자협의회로부터 감사패를 받는다는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던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마만 홍영표의원은 감사패를 받은직후 친일파 고백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2015년 8월, 광복 70주년을 맞는 의미있는해에 수십년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치부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친일행적 홍영표 조부는 누구?
홍영표 조부는 홍종철로 일제에 부역하고 작위를 받은행적이 있다고 합니다. 홍종철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 704명 명단에도 올라있다고 합니다.
홍영표는 조부의 행동을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홍영표는 독립유공단체들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지원하며 조부를 대신해 반성과 속죄를 해왔다고 합니다. 홍영표는 또한 국회의원으로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 재정에 힘을 쏟았으며 대표적인 친일파 송병준 후손들이 반환을 요구한 부평 미군부대 부지를 지켜내고 공원화를 추진했던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고위직에 있는 친일파 후손가운데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백하고 조상들을 대신하여 사과를 했던 사례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이유로 당신여론도 홍영표의원이 보여준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201년 8월 10일 홍영표 의원이 올린 사죄의 글이다.
친일과 망각’을 보았습니다. 친일 후손으로서 사죄드립니다.
‘아니 좀, 웃으세요.’ 2013년 11월, 생존 애국지사 모임인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임우철 회장님께서 대표해서 주신 감사패를 받을 때 사진입니다. 촬영하던 분은 제 속내를 모르고 웃으라 했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친일부역자들의 명부인 친일인명사전, 제가 그 사전에 올라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의 손자이기 때문입니다.
친일파의 후손인 제가 민족 앞에 사죄하는 길은 민족정기사업에 더욱 매진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고 독립유공자 어른들과 후손들도 자주 뵙습니다. 그러나 저 사진촬영 때처럼 그분들 앞에서 웃을 수가 없습니다. ‘조부의 죄지, 태어나지도 않았던 네가 무슨 죄냐’고 위로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렇게 제가 민족정기사업으로 칭찬을 받을 때는 거리 한복판에 벌거벗고 서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에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습니다.
사법적 연좌제는 없어졌다 해도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국민들 가슴 속 분노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실을 밝히며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손인 저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 인터뷰가 나오기 전에 공개적으로 사죄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7월 하순, 친일후손의 오늘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준비한다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할지, 무척이나 망설였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조용히 하던 일을 해가면서 용서를 구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부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오히려 더 화를 부를지 모른다’는 주변의 걱정까지…
인터뷰 전날 잠을 설치고 아침까지도 망설이다 결국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 용서를 구하는 후손으로 사는 것이 그나마 죄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저는 그 날을 잊지 못 합니다. 제가 참여정부에서 일할 때 큰 집 형님들이 갑자기 찾아오셨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조부가 등재되었다며 이의제기를 하자고 자료들을 들고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크게 놀랐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 때까지 저는 제 조부가 몰락했지만 한 때 나눌 줄도 알던 넉넉한 지주였고 고창고등보통학교 설립에 참여한 교육자로 알았습니다. 형님들이 가져오신 자료들을 보며 어떤 사정이 있었건, 교육자로 선행을 했던,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부역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친일행위라고 말씀드리고 형님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청춘을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자동차회사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일제의 만행을 옹호하지 않았고 일본의 현대사 왜곡과 제국주의 부활에 동조하지도 않았으며 조부로부터 그 어떤 자산물림이나 부의 혜택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서울대 법대에 재학하며 법조인의 꿈을 키우다가 이 사실을 알고 20대에 스스로 낙향해 평생 후학을 가르치며 사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재작년 작고하셨을 때 독립유공자 어른들께서 조문을 오셨습니다. 독립유공자 어른들의 조문을 받으시는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하시나요?’
평생 속죄하면서 사셨던 아버지와 국회의원이 되어 민족정기사업에 힘을 보태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 앞에 당당할 수 없는 저는 친일후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평은 일제 때는 병참기지로, 해방 후엔 미군기지가 연이어 주둔한 곳입니다. 구구절절 아픈 역사가 흐르는 이곳은 또한 독립운동의 거목 조봉암선생께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한 곳이며 부평 미군기지가 있는 땅이 자신들의 소유라며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으로 지켜낸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저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서명에 나섰습니다. 거리에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시민들께 서명을 부탁드렸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계속 민족정기사업에 나서다보니 독립유공자 어른에게 감사패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 보다 먼저 어쩔 수 없는 친일후손으로서 운명같이 제가 할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3.1절, 광복 70주년인 이번 8.15광복절이 다가올 때는 솔직히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그럴수록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냅니다. 더 질책 받고, 그래서 더 민족정기사업에 정진하며 살아야한다고 다짐합니다.
조부의 친일행적에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피해를 입고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거듭 용서를 구합니다. 저 역시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제가 조부님을 선택할 순 없는 일이겠지요. 앞으로도 평생, 민족정기사업에 더욱 힘을 바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주십시오. 저는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광복 70주년 8월 10일, 국회의원 홍영표 올림 (글 철처: 홍영표 의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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